우리사는동안
바람이 부는 것은 누군가를 갈망하고
있기 때문이다.
내가 너에게 혹은
네가 나에게 보내는 바람엔 향기가 묻어 있다.
삶이란게 그렇습니다.
기쁨보단
슬픔이 더 많지요.
또한 사람이란
것도 그렇습니다.
같은 양이라 할지라도 기쁨보단 슬픔을
더욱 깊게 느끼지요.
뿐만 아니라
기쁨은 순간적이지만
슬픔은 그렇지 않습니다.
슬픔의 여운은
기쁨의 그것보다
훨씬 오래인 것입니다.
왜겠습니까?
아무리 생각해도
전 그 해답을
알 수가 없었습니다.
그러나 전 이제는
그 까닭을 알 수
있게 되었지요.
비바람을 거친
나무가 더욱 의연하듯
사람도 슬픔 속에서
더욱 단련되어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.
사랑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.
헷세가 얘기했듯이
사랑이라는 것은
우리를 행복하게 하기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.
우리가 고뇌와 인내에서 얼마만큼 견딜 수 있는가를 보이기 위해서 있는 것이었습니다.
언제나 극한 상황이었습니다.
언제나 다만 스치고 지나간 뒤에야
"그것이 내 삶의
한 부분이었구나!"
하는 사실을 깨달을
수가 있었습니다.
그러다보니 점차 재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.
글쎄...재밌다니?
눈살을 찌푸릴
분도 있겠지만
삶이란 전 한번
살아 볼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.
언제나 극한 상황이었고 언제나 최악이었지만
삶이란 어차피 곡예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.
때문에 고통스러운
삶을 살아가는 사람은
그만큼 진지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겁니다.
그리하여 그는 쓸쓸하거나 외롭지
않을 수가 있습니다
왜냐하면 늘
혼자임을 알고 있었기에
모두들 스치고
지나간 뒤에도...
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러길 바랍니다.
이정하
<우리 사는 동안에>









